「시한부 3000자」(余命3000文字) 번역

2022. 7. 5. 16:56소설가가 되자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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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3000자

 

 

 

   '대단히 말씀드리기 어려운 말이지만, 당신의 남은 목숨은 앞으로 정확히 3000자입니다'

 

 

 의사의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확인 차 한 번 더 물어보았지만, 의사는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앞으로 몇 년 남았다고는 들어본 적 있습니다만……대체 그건 무슨 말인가요?'

 

   '말 그대로 입니다. 당신은 앞으로 3000자 밖에 살 수 없습니다. 3000자를 넘는 동시에 당신은 쓰러질 겁니다. 보세요, 잡담하는 사이에 200자나 써버렸어요'

 

 

 나는 당황해서 황급히 입을 닫았다.

 

 

   '으음, 백 보 양보해서 제가 앞으로 3000자 밖에 살 수 없다고 쳐도, 치료법은……?'

 

   '치료 방법은 없습니다. 단, 대책은 존재합니다'

 

   '대책?'

 

 

 의사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당신의 남은 인생을 남은 3000자 안에 압축시키면 됩니다. 3000자가 끝나기 전에 수명이 다하면, 시한부고 나발이고 없는 거겠죠. 그러기 위해서도, 가능한 철학적 사색은 지양하고, 풍경에 관심도 두지 않는 겁니다. 예를 들면 아까 전의 의사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같은 쓸 데 없는 묘사입니다. 앞으로는 자제해 주세요. 회화문도 남발하면 안되겠네요. 지문보다 문자 수를 더 소비해버리기 쉬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비슷한 매일을 보내고, 무난한 인생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분명, 3000자가 오기도 전에 수명이 다할 겁니다'

 

 

 나는 반신반의한 채 의사의 말에 수긍했다. 그리고, 현시점의 문자 수를 확인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문자 수는 700자 정도. 나의 남은 인생은, 앞으로 2300자.

 

 

 

 

 그로부터 나는 의사의 조언대로, 무난한 매일을 보내게 되었다. 평일은 회사와 집을 왕복할 뿐이고, 휴일은 집에 틀어박혀 사건이 일어날 듯한 장소는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사람과의 교류는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에 최소한으로 했고, 그리고 인생의 의미 같은 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생활을 신경쓰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5년이 지났다. 나는 달력에서 오늘의 날짜를 다시금 확인했다. 이 날로써 나는 무사히 35회 째의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내 방 안에서 남은 글자 수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약 1000자. 이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천수를 다할 뿐인 문자 수. 허무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젊을 때 죽는 것 보다는 낫다. 문자로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더라도 이래저래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고, 애초에 대다수의 인간이 그런 인생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걸까? 아니, 그만 생각하자. 쓸 데 없이 문자 수를 써버릴 뿐이니까.

 

 그러나 그 때. 나는 문득, 집 밖에서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떠들석한 소리. 뭘까 하고 밖에 나가 보니, 건너편의 목제 아파트가 화재로 격하게 불타고 있었다. 아파트 앞에는 피난해 온 주민, 그리고 구경꾼의 모습. 아아, 불쌍하게도.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에 돌아가려 했다.

 

 

   '아직 안에 어린 애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천천히 소리가 나는 방향에 시선을 두었다. 엄마인 듯한 여성이 주변의 주민에게 필사적으로 저지당하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이 엄마의 시선 끝을 눈으로 쫓았다. 아파트 3층의 구석 집. 열린 창문으로 언뜻 비치는 아이의 모습. 아파트의 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많은 인파가 있었지만, 압도적인 화재의 공포로부터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여기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도 나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머리 속에서 그런 비겁한 생각이 떠올랐다.

 

 앞으로 1500자. 여기서 내가 구하러 가면, 그 만큼 수명이 줄어들 것이다. 아니, 구하는 도중에 글자가 다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새에, 매일 어디선가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것이 단지 눈 앞에서 일어났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다. 자, 눈과 귀를 닫고 빨리 돌아가자. 어디로? 고작 남은 1000자 정도로 끝날 자신의 인생으로? 그 물음에 내 발이 멈췄다.

 

 

   '젠장!!'

 

 

 나는 불타오르는 아파트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우뚝 서있을 뿐인 주민에게 양동이를 빼앗아, 전신에 물을 뒤집어 썼다. 물의 차가움과 공포로 떨리는 발을 채찍질하고, 나는 아파트의 계단을 올라 아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복도 벽을 뒤덮을 듯이 불길이 타올라 흑연이 충만했다.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도록 자세를 낮추며 목표로 한 집에 다다랐다. 문 손잡이를 쥐니 엄청난 뜨거움에 바늘에 찔린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이를 꽉 깨물고 문을 열었다. 열풍과 흑연이 내 몸을 휘감았다. 앞으로 1000자. 시간이 없다. 방 안의 벽에는 불길이 번지고 있었고, 천장을 흑연이 뒤덮고 있었다. 잿빛의 시야 속에서 나는 손을 더듬는 상태로 방 안으로 향했다.

 

 사우나 같이 찌는 복도를 가로 질러, 맨 안 쪽 방에 뛰어들었다. 좁은 방 구석에 5살 정도의 조그마한 아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움츠리고 있었다. 나는 여자 아이를 향해 달려 들었다. 여자 아이가 내 모습을 본 순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옳지 옳지,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엄마한테 데려다 줄 테니까'

 

 

 나는 여자 아이를 안아 들고, 곧바로 방을 빠져 나갔다. 그 후엔 온 길을 그대로 돌아갈 뿐. 그러나, 내가 가슴을 쓸어내린 그 순간이었다.

 

 굉음과 함께 복도 벽이 무너졌고, 주위의 집에서 화산과 같은 불덩어리가 흘러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이를 끌어안고, 그대로 쭈그려 앉았다. 타오르는 듯이 뜨거운 등. 무너진 벽의 일부분이 내 등에 직격했다. 숨이 점점 가파라져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화재 때문인지, 3000글자가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불길의 기세가 조금이나마 약해졌다. 나는 고개를 들고, 현관 쪽에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눈 앞의 광경에 머리가 새햐애졌다. 아까까지는 어떻게든 지날 수 있었던 복도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진홍색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품 안에서 아이가 큰 소리로 콜록거렸다. 기침은 애처로울 정도로 건조했다. 그리고, 내 목숨은 앞으로 500자.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 밖에 없다 ! 나는 아까 있었던 방으로 뛰어 돌아갔다. 그러나, 불길은 벌써 여기까지 뻗어 왔고, 방 안은 복도와 같은 정도로 불길이 감싸고 있었다. 나는 각오를 다졌다. 아이를 꽉 껴안고, 구부정한 상태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다. 뜨겁다 !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라 ! 나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입고 있는 옷에 불이 번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창문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서, 아이를 끌어안은 채로 몸을 내던졌다. 본능적으로 등을 지면으로 향했다.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가 나고, 등에 충격이 몰려왔다. 나는 곧바로 껴안은 아이를 팔에서 떼어놓았다. 희미해진 시야 한 켠에, 아이의 옷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은 것이 보였다.

 

 

   '유카리 !!'

 

   '엄마 !'

 

 

 멀리서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구급차 !'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옷에 번진 불이 점점 커지고 있던 것을 알았으나, 이제 뜨겁다는 감각도 사라지고 있었다. 문자 수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나는 삶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바보같은 짓을 했다. 어렴풋한 의식에서 그렇게 욕짓거리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온했다. 좀 더 얌전하게 있었으면, 좀 더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남은 힘을 쥐어 짜내 고개를 옆으로 향해서 아이 엄마에게 안겨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두 명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당신의 인생은 몇 글자 정도인가요?

 

소설가가 되자 村崎羯諦 작가님

 「余命3000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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