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못(父の池) 번역

2022. 7. 15. 20:50소설가가 되자 번역

 

 

 

 

아버지의 연못

 

 

 

 

 사람이 꿈을 포기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화가가 되는 꿈을 포기한 이유, 그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단순히 재능이 없었다든가, 운이 나빴다든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자신의 고집과 맞바꿔 꿈을 버린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습니다. 특히 수채화로 그리는 풍경화가 특기였고, 학교의 그림 대회에서는 여러 번 상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턴가 막연하게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 수 있다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부모님과 진로에 대해 얘기했을 때의 일입니다. 미대에 가고 싶다고 제가 말하니, 아버지는 맹렬히 노하셨습니다.

 

   '미대 같은 데에 가서 어쩌려는 거냐. 화가라도 될 셈이냐'

 

 지금까지 제가 그림으로 상을 받았을 때는 기뻐해 주셨으면서.

 

   '예술 같은 건, 취미로 하는 거다. 그걸로 먹고사는 인간은 정말 극히 적어. 그림 조금 잘 그린다 칭찬받았다고 우쭐거리지 마라'

 

 그때 저는, 지금까지 이해심이 많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저와 가치관이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좋은 기업에서 일하며 안정된 여생을 보내는 것, 여성은 그런 좋은 결혼 상대를 찾아 아이를 낳는 것이 최고의 행복, 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전업 주부셨지만, 그것도 아버지가 바란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게도 당신 생각대로의 인생을 걷게 하려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평범한 대학교에 들어가 제대로 된 회사에 다니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마. 어떻게 해도 미대에 가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일절 돈을 주지 않을 거다. 네 돈으로 가라'

 

 사춘기라는 위험한 연령이었던 것도 있었겠죠, 저는 그렇게나 좋아했던 아버지에 대한 것을 전부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학업의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지만 미대의 등록금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께 등을 밀리듯 평범한 인문계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화가가 되는 꿈을 포기한 건가 하신다면, 그건 아닙니다.

 

 저는 대학 진학을 계기로 집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이해심 없는 아버지와 떨어지고 싶었기도 했지만, 제 나름대로 생각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일부러 자택에선 다닐 수 없는 지역의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저는, 수업엔 제대로 나가지 않고, 아르바이트에 전념했습니다. 계획을 위해서 돈을 벌 필요가 있었습니다. 부양 범위 내에 잘 소비해야 했던 게 힘든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시절부터 모았던 돈과 합치니 그럭저럭 금액이 모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대학을 2년째에 중퇴하고 미술계의 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미대에 4년간 다니는 만큼의 금액이 들지 않아서 전문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그때까지 미술학원에 다녔던 적도 없고, 학교의 부활동인 미술부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림의 기초나 데생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대학을 그만둔 것을 아신 아버지가 열화와 같이 노하셨습니다.

 

   '학비도 생활비도 일절 주지 않는다. 집 문턱을 다시는 넘지 마라' 라고 수화기 너머로 호통치셔서, 저는 의절했습니다. 상정 내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돈을 모아 왔던 것이니까.

 

 

 

 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저는, 미술계의 창작 작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한편, 수채화를 그려서 온라인 스토어에 출품했습니다.

 

 작품은 전혀 팔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괴롭진 않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언젠가 꽃이 필 날을 꿈꾸며 조금씩 작품을 제작하며 출품해 나갔습니다.

 

 

 

 아버지와는 절연 상태였지만, 어머니와는 빈번하게 연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씩, 쌀이나 야채 등의 식재료를 보내주시며 생활을 지탱해 주셨습니다.

 

 사이트에 가입하고 2년 정도 지나서, 간신히 작품이 처음으로 팔렸습니다. 사이트의 시스템 상, 어디의 누가 구입해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금전의 교환은 운영 회사가 사이에서 맡아주고 있고, 서로 익명으로 주고 받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디서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주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자신의 그림이 각인됐다. 누군가를 감동시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꼈습니다.

 

 하나가 팔리니, 기세가 붙은 듯이 그로부터 작품을 게재할 때마다 판매되었습니다. 저는 서서히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에 3천 엔 정도의 가격을 붙였지만, 조금씩 사이즈도 크게 하고, 가격도 높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림 하나에 먹고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그림을 마음에 들어 사주는 것이 엄청난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있던 때에, 개인전을 열어 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개인전을 여는 데에는, 작품이 필요합니다. 수중에 있는 것은 온라인 스토어에 팔기 꺼려했던 졸작뿐이었기에, 개인전 용의 작품을 그려 모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잠시 온라인 스토어에서의 판매를 쉬고, 개인전 용의 작품 창작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려던 와중,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와서, 아버지가 돌연 쓰러지셨다고 하셨습니다.

 

 뇌출혈이었습니다. 제가 병원으로 서둘러 달려감과 동시에,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후,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유품 정리를 하고 있던 때, 아버지의 창고로 쓰이던 방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양의, 제가 그린 그림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이트를 경유해 판매했던 제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출품했던 작품 전부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림을 팔고 있다는 걸 아버지께 말하니까, 처음에는 모르는 체를 하시다가, 몰래 구입하셨던 거야. 네 생활비에 보탬이 되었으면 해서. 입으로는 반대하시면서도, 너를, 정말 걱정하셨어'

 

 저는 전신에 힘이 풀렸습니다. 어머니의 말은 머리 밖을 둥실둥실 떠다닐 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장례식에 와주신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돌아다녔습니다. 모두들 '좋은 얘기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화가가 되는 걸 반대하면서도, 작품을 사서 몰래 딸을 응원하고 있었다니'

 

 저는 절망감에 빠지면서, 그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림을 사는 걸로 네게 생활비를 보내주려고 하신거야'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저는 굴욕감에 몸이 떨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를 보고, 감격의 눈물에 목이 메였다고 생각하신 듯하나, 완벽한 착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제 작품을 전부 사들인 탓에, 세상에 나와야 했던 작품들이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묻혀졌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사지 않았더라면, 생활에 보탬이 될 정도로는 팔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혹시나 별난 누군가의 눈에 들어서, 구입되어서, 누군가의 현관, 거실, 혹은 화장실 벽에라도 상관없이, 누군가의 일상에 색을 더하고, 누군가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게 가능했을 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런 일말의 가능성을 아버지가 빼앗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산 작품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창고 안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화가로서, 그 작품이 사람의 눈에 닿을 기회를 빼앗긴 만큼 분한 일은 없습니다.

 

   '거기 있는 작품들을 다시 판매하면 되지' 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뭐, 그 사람의 말대로 다시 출품한다면, 어쩌면 몇 개는 팔릴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건 제게 있어 폐점 재고 처분같은 겁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작품을 그릴 기력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 생각하는 제가, 그림을 팔 필요가 있는 걸까요? 지금까지 제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에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렸던 것입니다. 그 기분이, 뚝 하고 부러져 버린 것입니다.

 

 마라톤 주자가, 35km를 지나 달리고 있을 때, 언젠가 골 지점에 다다른다, 괴롭지만 힘내자,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너는 길을 잘못 들었다, 스타트 지점으로 되돌아 가라, 라고 들었을 때, 다시 달릴 기분이 들까요?

 

 

 

 

 

 이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만둘래, 라고 말하니 어머니는, 애써 아버지가 응원해 줬는데, 라고 말했습니다.

 

 응원이라는 것은 뭘까요? 실제로 아버지가 진심으로 응원해 줬는지 아닌지, 지금에 와서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그건 사실은 저를 위한 게 아니고, 아버지가 한 방식은 틀렸다, 라는 것 뿐입니다.

 

 사람, 악의가 없는 사람이 가장 처신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느껴집니다. 아버지에게 명백히 악의가 느껴졌다면, 저는 아버지를 책망하고, 아버지의 무도함을 주위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도 있고, 그 분노를 창작의 에너지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악의인지 선의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어머니나 아버지의 친구들은 아버지의 선의의 응원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이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결국 저는, 줄곧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림을 팔았다, 개인전을 열고, 뭐가 그리 좋았는지 예술가인 척을 했던 겁니다.

 

 만약 제가 그림 가격을 높여서 10만 엔, 20만 엔이라고 값을 붙였더라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지금까지는 달에 몇 작품, 합계 10만 엔 정도로 그쳤지만, 더욱 고액이 되었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끝나서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착각에서 재빨리 벌어날 수 있게 되어서.

 

 

 

 

 장례식 후, 아버지의 친구들이 나타나서,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에 취직하라는 듯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버지는 생전, 흠뻑 취하실 때마다 그렇게 부탁하셨던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파트를 팔아치우고 집에 돌아와,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의 어머니나 저의 생활을 생각해 보면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한 편으로, 어머니도 다른 지인도 '아버님은 네가 그림을 계속 그리길 바라셨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셨습니다. 

 

 제가 두 번 다시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 말한 것은, 그림을 그릴 기력이 없어졌다는 그런 게 아닙니다.

 

 혹시 그 전에 무언가의 장단에 제 그림이 인정받아, 제가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미담이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어머니들은 분명, 아버지가 지원해 주셨던 덕에 제가 화가가 될 수 있었다, 고, 아버지를 격찬할 게 틀림없습니다. 만약 제가, 마음이 꺾은 아버지의 소행을 뛰어넘어서 어엿한 화가가 되었다고 해도, 아버지의 공적인 듯이 되어버리겠죠. 저의 화가로서의 성공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계속 달라붙을 것입니다. 그런 건 절대 참을 수 없는 거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바다 저 편의 대륙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작은 배를 만들어 바다에 떠올라,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매일 노를 저으며 작은 배를 움직이고, 팔의 통증도 아픔이 되지 않고, 계속 노를 저을 때마다 조금씩 신대륙에 가까워 진다고 기대하며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제 작은 배가 있던 곳은 해외가 아닌, 아버지가 집의 정원에 만들어 둔 연못 안이었을 뿐임을 알았습니다. 작은 배는 아버지가 만든 안전한 연못 안을 빙빙 돌고 있었을 뿐.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를 전진시켜도, 동경하던 미지의 대륙에는 영원히 도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저, 바짝 말라버린 연못을 눈 앞에 두고, 작은 배를 껴안고 그저 멍하니 서있는 제가 있을 뿐입니다.

 

(了)


소설가가 되자 桃園沙里 작가님

「父の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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