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방송탑에 용이 죽어 있다(今日も電波塔で龍が死んでいる) 번역

2022. 8. 30. 17:14소설가가 되자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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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방송탑에 용이 죽어 있다

 

 

 

 

 오늘도 방송탑에 용이 죽어 있다.

 

 

 창천을 꿰뚫을 듯한 방송탑에 걸린 채 절명한 용을 올려다보면, 또 인가, 하는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아마, 숲이나 바다, 강이나 호수로 도망치는 게 늦었던가, 혹은 잘 도망치지 못했던가 둘 중 하나다. 도망친 곳도 결국 인간이 보호하는 땅이기에, 그런 용은――용 이외에도――많지 않다.

 

 

 여름의 신음 소리 같은 매미 울음소리가 일대에 울려 퍼지고 있다.

 

 

 용이나, 다른 환상의 생물들의 사체를 보는 것이 싫어져서 도심에서 벗어나 이 마을에 이사를 왔는데도, 시골에서 조금 도시에 가까운, 조금 발전한 정도인 이 마을에도 역시 용은 죽어 있다.

 

 오히려, 도시에서보다도 큰 것들의 수가 많아서 우울해졌다. 어제는 새로 지어진 카페를 으스러뜨린 뿔이 달린 것들의 우두머리가, 그저께는 차에 걸려 넘어져 빌딩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힌 거체의 요괴가 그렇다.

 

 

 도시에서는, 작은 것들이 자잘하게 큰길 구석이나 뒷골목에서 얌전히 죽어 있었다. 이미 그것들은 그런 장소에서 너무 많이 죽어서 눈에 띄는 곳에서 죽을 개체가 남아 있지 않았을 뿐이다.

 

 이곳에는, 얼마 남지 않은 자연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들이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지방도 개발의 물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사람들은 그것을 환영하고 있다. 벗어날 수 없이 죽는 것은 환상의 생물들 뿐이다.

 

 저 용은 아직 어렸다. 분명 반골 정신으로 도망치지 않고 하늘을 선택한 것이겠지. 그 결과, 높이 치솟은 방송탑에 걸려서 그 성질을 건드려 급속히 힘을 빼앗기고, 발버둥 치다 힘을 다해서 죽었다.

 

 하늘을 선택한다면 좀 더, 조금 더 높은 곳까지 날아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 갑자기 쏟아진 비는 방송탑의 용을 애도하는 것이고, 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은 더욱 높은 곳으로 도망친 용의 흔적이다.

 

 

 그러나, 저것도 얼마나 갈까.

 

 

 위성의 전파 통신에 닿으면 눈 깜짝할 새에 추락할 것이다. 지금은 운 좋게 그것을 회피하고 있는 듯하지만, 지금 지구 위에는 수많은 위성이 떠 있다.

 

 이미 이 지구에는, 예전 그들의 영역이었을 터였던 바다 위, 그리고 하늘 위에 조차도, 그들이 있을 곳은 없는 것이었다.

 

 

 

 동료를 애도하는 비를 뒤집어쓰고, 책망당하는 듯한 느낌으로 집에 돌아갔다. 방송탑의 용의 텅 빈 눈이 내 등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좌부동좌의 뒷모습이 벽장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직 내가 있기에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저 아이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좌부동자는 집에 존재하는 일본의 정령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나 슬펐다.

 

 

 창문을 마주한 책상으로 가서, 켜진 컴퓨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는 나조차도, 이렇게 문명의 이기에 따르고 있는 것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이 방이 시원한 것은 에어컨 덕분이고, 집필은 컴퓨터로 하며, 그것들을 움직이는 전기는 3일 전에 야타가라스가 걸려 죽어 있던 전깃줄을 통해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야타가라스 : 일본 신화 속의 까마귀)

 

 발전소에선 얼마나 많은 환상의 동물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일까. 전기를 생산하는 사람의 죄는 무겁고, 어떻게 해도 갚을 수 없는 수준으로 이 세상의 신비를 죽였다.

 

 그것을 애처롭게 생각하고, 괴롭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마음 이상으로, 문명의 발전이 낳은 '편리함'의 유혹은 강했다.

 

 

 한숨을 내쉰다, 이 갈등도 며칠이나 갈까. 단념하고, 손을 키보드 위에 두었다.

 

 

 지난밤을 몽상한다. 하늘을 수놓은 별, 끝없는 쪽빛의 밤하늘에 빛나는 그 은빛의 아름다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언덕 위에 선 아름다운 존재들.

 

 커다란 검은 날개가 떠오른다. 만월과 같은 눈동자에는, 약해져 가는, 친구인 용에 대한 생각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체념과 비애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아아, 어째서.

 

 이것도 인간의 오만인가.

 

 

 그들이 인간을 원망하는 모습을,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체념과 비애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자애가 떠올라 어쩔 수가 없다. 어째서 원망해 주지 않는 것일까 하고, 나는 손을 멈추었다.

 

 신비를, 환상을,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을 죽여버리는 우리들을, 원망하길 바라는 데도.

 

 

 또다시, 깊은 한숨을 쉰다.

 

 

 책상 옆에 정렬되어 있는 연구 자료를 휙 펼쳤다. 거기에 있는 것은, 내가, 그들은 존재한다고 어딘가에 남겨 두고 싶었기에 써 모아 둔 '언젠가' 에 관한 것뿐이다.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태어났다.

 

 자연을 가까이하고, 자연을 떠받들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시절의 우리들로부터 태어났다.

 

 흐르는 강이나 하늘을 떠도는 천둥에서 용을, 밤의 어둠에서는 지박령을, 숲 깊은 곳에서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를.

 

 우리들이, 낳아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들이 인간을 원망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잃어버린 사랑을, 미움이 아닌 체념을 품는 것은, 유전되고 순환하는 자연의 아이들 같았다.

 

 

 나는 6살 무렵에, 처음으로 용의 사체를 보았다. 그때, 그런 그들을, 어딘가에 남겨 두고 싶어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세상 속의, 환상의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것의 일부는 분명 나와 같을 것이다. 마치 미래에 이어지길 기도하는 듯이, 생각을 글에 담아서.

 

 

 분명 그것도 무의미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또다시, 우리들의 집필물이 '판타지' 라는 묘표를, '허상' 이라는 낙인을, 그들에게 깊이, 깊이, 새겨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학 기술 외에, 우리들의 이야기 또한 그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판타지라고 하는 말에 집어넣은 염원의 풀솜으로 목을 조르듯이 죽이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설원을 달리는 은빛 늑대들의 우두머리를, 밤하늘까지도 자유로이 다루는 검은 까마귀도, 우리들의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의 세상을 바꾼 누군가를.

 

 

 일심불란하게 손을 움직여서, 완성된 것을 천천히 되풀이할 즈음에는,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이제 곧 밤이 온다.

 

 어느샌가 비가 그쳐서, 나는 굳어버린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비가 남긴 향기가 온도 높은 바람에 실려 온다.

 

 매미 울음소리는 점점 작아져서, 운치 있고 아련하게 여름 황혼을 속삭이고 있다.

 

 어딘가의 집에서 귀가한 집주인이 에어컨 전원을 켰는지, 실외기가 돌아간다. 그 위에서 몹시 연약해져 있던 귀신이 끝내 사라졌다.

 

 해질녘의 비행기가 다수의 사람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석양빛의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거기에 부딪혀 극채색의 괴조가 추락하고 있다.

 

 아무런 환상의 생물도 없는 밤이 온다. 우리들이 죽인 밤이다. 가로등 아래에는 귀신이 죽어 가고, 살 곳을 잃은 어둠의 아이들이 허둥거리며 쓰러져 갈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신비의 생물이 숨 쉬는 모습을 몽상하지 않을 수 없다. 죽어가는 신비만을 바라보며, 그 환상을 놓치고 싶지 않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별은 보이지 않는다.

 

 저 은색 빛은 이제 사람이 가는 길을 비춰주지 않는다.

 

 

 그렇게, 오늘도 방송탑에 용이 죽어 있다.

 


소설가가 되자 ふとんねこ 작가님

「今日も電波塔で龍が死んで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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